[Book] 불의 꽃 (14.02.14~18)

2014. 2. 18. 14:17Book Story

1


우연치 않게 만나게 된 녀석. '불의 꽃'.

이전작품 '채홍'에 이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처벌을 받은 

조선 여성 3부작 중 두번째라고 한다. 역사소설에 더욱 흥미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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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2014/02/15 - [Book Story] - [Book] 채홍 (12.02)










2 (스포 포함)


[14.02.14 / p11~86]

시작은 마지막 장면을. 거기서부터 돌아보는 기억. 우연찮게 시선은 고려말을 비추고, 이성계와 최영을 젊은 장군, 늙은 장군이라 칭하는 작가. / 간통이라 했지만... 치정을 다룰거라 생각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아이들의 동화로 시작할 줄은 몰랐다. 내용은 다르지만, 소나기가 떠오름. 그리고 작가의 필력. 톡톡 튀면서도, 깊이를 느끼게 하는 문장들. 빠져든다.


[p15 중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구경감은 죄인이 아니라 제물이었다. 죄가 아니라 고통이었다. 그녀가 기절한 채 움직이지 않자 궂은고기는 먹지 않는 맹수처럼 구경꾼들은 흩어졌다. 


[p57 중에서]

이름을 부르고 이름이 불리고서야 비로소 처음이다. 새로이 동무를 얻은 그들은 처음의 즐거움에 한껏 들떴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무리 찬란한 꽃이라도 모다 이별해야 한다. 기꺼운 이별로 흔들리는 매화나무가 잔드근하게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p65 중에서]

아무리 철모르쟁이라도 그런 눈빛은 함부로 던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비밀에 눈뜨기 직전 가장 광채를 발하는 그것은 위험하고 유독했다. 순진한 갈증, 아련한 열망으로 말갛게 빛나는 눈동자. 


[p68 중에서]

하지만 명백한 이유가 있든 없든,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 때문에 서로는 패거리에게 괴롭힘 당했다. 


[p72 중에서]

두려움은 사람이 가진 가장 민낯의 감정이었다. 얼굴이 아니라 마음에도 화장이 필요했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곳이 어른들의 세계였다. 고작 열한 살에, 서로는 더 이상 아이일 수 없었다. / 사물과 감정, 그리고 철학을 표현하는 저자의 방식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마음에 화장을 한다는... 그 표현이 와닿고, 또 아프다.


[p81 중에서]

미친 코끼리에 쫓겨 칡덩굴을 타고 우물 안으로 도망치니, 우물 안 벽에는 이무기가 혀를 널름거리고, 우물 아래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더라. 그 와중에 칡덩굴까지 검은 쥐와 흰 쥐가 번갈아 갉아대니,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 ... 그처럼 진퇴양난의 생지옥에 빠진 나그네의 입안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나무 위 벌집의 꿀이 떨어지자 나그네는 당장의 곤란을 까맣게 잊고 쩝쩝대며 단맛에 취하니, 그 또한 인생이라!


[14.02.15 / p87~172]

고려말, 조선초. 아직 갈길을 잡지 못한 여인들의 모습. / 서로와 녹주의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선택. 그리고 앞날. '추락, 죽음의 연습까지도, 다름 아닌 삶이었다.' / 각자. 어쩌면 이미 '정해진 길'을 걷는 둘. 지금과 별반 다를게 없지 않나;;


[p104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말을 멈추었을 때의 침묵이 어색해졌다. 어린 시절엔 말없이 한참을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침묵 속에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서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파른 침묵의 비탈로 기억들이 두글두글 굴러 내렸다. 


[p111 중에서]

하지만 보상을 바라는 사랑은 크기에 비해 너무 무거운 몽근짐이었다. 고마울수록 그것은 무거워졌다. 보은의 부담이 커질수록 감사보다는 죄책감이 자랐다.


[p160 중에서]

질펀한 꽃밭이었다. 손끝만 까딱 해도 절로 꺾이는 꽃들이 만발했다. 마음 졸이지 않아도 꽃들은 간드러지게 웃었다. 무쇠라도 녹일 듯이 교태를 지었다. 


[p164 중에서]

훗날 서로는 이때의 짧은 방황을 또렷이 기억해 내지 못했다. 다만 뿌옇고 흐린 안개 속을 헤쳐 다닌 듯 먹먹했다. 생애 어느 한때 그처럼 자욱한 순간이 있다. 생각과 감각이 모두 마비되어 버린 망석중의 시간. 남은 것은 젖은 옷자락처럼 척척하게 들러붙는 환멸뿐이었다. 


[p169 중에서]

그녀는 정답만을 말했다. 하지만 서로가 물은 것은 정답이 없는 이야기였다. 


[14.02.16 / p173~215]

불가에서 유독 강조하는 '인연'. 서로와 녹주의 이야기가 참... 아프게 다가온다. '이미 정해진' 건 아닐까 생각되는... 그림들이... 때로는 다행이라 여겨지고, 때로는 안타깝게 여겨진다. "안주는 필요 없다."는 운공 스님의 마지막에... 고개가 숙여진다. / 새로운 인연의 시작.


[p175중에서]

고인 물도 밟으면 솟구친다지만, 심심산속의 이 빠진 주발은 실수로라도 밟는 이가 없었다. 하루하루는 느리게 갔지만 일곱 해는 촌음처럼 지났다. 꽃이 몇 번 피었다 지고, 눈 위에 노루 발자국 몇 개가 찍혔다 녹아버리곤 그만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고인 물은 그대로 썩어갔다. 흐를 수 없는 번민은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잠시잠깐 잊히는 듯했으나 물때의 켜에 가린 것뿐이었다. 


[p180 중에서]

스스로 왕이 되었던 젊은 장군은 아들에 의해 쫓겨났다. 많은 자식들 중 그를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었다.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 아는 것은 오로지 빼앗거나 빼앗기는 것뿐이었다. 아들은 아비에게 배운 바에 지극히 충실했다. 


[p199 중에서]

"불행을 경쟁하지 마라!“

"불행을 경쟁하노라면, 너도 모르게 이기고 싶어질 것이다. 설령 그 승리의 조건이 더 큰 불행일지라도.“


[p205 중에서]

 그리움은 원망이 되었다. 열망은 회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할 수 있었던, 할 수밖에 없었던 최선은 그 모두를 침묵 속에 가둬버리는 것뿐이었다. 토해낼 수 없는 깊디깊은 괴로움과 슬픔을 숨기려 입을 다물고 마음을 가뒀다. 침묵은 교활하고 단호했다. 하지만 속절없는 세월을 보내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었다. 


[p214 중에서]

하지만 무릇 사람들은 슬픔 그 자체로 미치지 않는다. 슬픔은 가슴을 갈가리 찢고 영혼을 너덜너덜하게 헤집지만, 그것이 터져 나와 흘러넘치는 순간 독성은 사라진다. 


[14.02.18 / p216~339(완)]

참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기대했던 세종의 모습은 마지막 잠깐이었지만, 서로와 녹주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구절구절을 곱씹어본다. '채홍'에 이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처벌을 받은 조선 여성 3부작 중 두번째라고 하니. 세번째 작품도 기다려봄^^;


[p216 중에서]

모두가 우연이라 불러도 당자가 필연으로 믿는다면 그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는 법이다. 


[p236 중에서]

대개의 행복은 평범했다. 불행하지만 않아도 행복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진정 행복하지 않기에 잊을 수 없는지, 잊지 못하기에 행복하지 않은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한시도 그녀를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익숙한 삶 속에서 여전히 낯설고 당황스러운 그것이 돌올하였다. 짙은 권태의 안개 속에 반짝이는 한 점 푸르른 빛. 


[p270 중에서]

하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 사랑할 수는 없었다. 고마움을 빼면 더 남을 것이 없는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해졌다. 곱씹을수록 외로워졌다. 


[p287 중에서]

청화당의 나라와 녹주의 나라는 확연히 달랐다. 새나라의 기틀이 잡혀갈수록 그를 벗어난 것들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었다.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가혹한 처벌에 불가결했다. 하지만 죄가 같다 해도 벌은 달랐다. 서로는 권력의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 속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언제나 표적이 되는 것은 더 악한 죄인이 아니라 더 약한 희생양임을. 


[p294 중에서]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진실을 말할 수 없을 뿐이었다. 


운공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귀산은 그녀의 인연이었다. 하지만 인연이 모두 좋고 귀한 것이라 믿은 것이 착각이었다. 애정으로 얽혀 맺힌 인연은 언제라도 악연이 될 수 있음을 몰랐다. 


[p300중에서]

한 사람만 아는 비밀은 없다. 당자가 아닌 한 사람이 아는 순간부터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p314 중에서]

높은 가지는 부러지기 쉬우니 흔드는 바람이 사방에서 거세기 때문이었다. 


[p324 중에서]

함께 사랑했으나 끝내 갈 길은 달랐다. 


[p333 중에서]

남들이 죄라 부르는 것을 나는 추억이라 부릅니다. 나의 죄는 추억으로 쾌히 무거워집니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끝에 대한 수많은 상상으로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우리는, 시작과 끝 사이의 짧고도 영원한 현재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그때 그곳에서 빛나던 사랑뿐이었습니다.







3



불의 꽃

저자
김별아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13-04-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 줄의 기록에서 시작된 끝없는 상상력 김별아 신작 장편소설 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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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정보없이... 읽어내려가는 작품 중... 

마음에 와닿게 되는 작품이 생기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 '불의 꽃'이 내게 그랬다.


시대를 뺀다면 그저 그런... 남녀의 사랑이야기.

하지만 고려말에서 조선초기. 격변의 시기이자... 유교의

개념을 뿌리내리고자 했던 그 시기였기에. 

더욱 '특별'해진 남녀의 사랑이야기.

작가의 톡톡 튀는듯 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문체가

사물 하나와 감정 하나를 참 맛깔나게 표현해낸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옮겨 적느라... 속도가 더 나지

않았던^^;


세월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 중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포함되지 않을까?

현재에는 아무렇지 않을... 그것들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서 모형이 비틀어져 보이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이것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 우리가

돌을 던지고 있는 그 어떠한 것들도... 적어도 한번은!

진득하게... 그 속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지.


'서로'와 '녹주'의 애절한 마음 이야기. 그리고

그 시절 이야기. '불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