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21. 20:00ㆍBook Story
1
책을 좋아한 계기가 소설이었다보니...
꽤 오랜 시간 쭈욱... 소설만 내리 읽었다.
그러다 소설 속 재료에 대한 호기심에 인문서적을
읽었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시집은 사실상 없었던
듯 싶다. 기억 속의 시집을 돌아보면...
정지영의 스윗뮤직박스에서 나왔던 파랑 빨강 시집.
고교 선배이신 류시화의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었던가)
그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집을 읽게 됐다.
추천과 선택의 사이에서 시작하게 된 기형도의 '기형도 전집'.
기형도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이.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막 읽기 시작한 즈음. 어렵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
의욕이 확 떨어졌다^^;
2
[14.02.13 / p19~50]
한자.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쓰이니....' ;;; 문맹의 아픔을 느낀다^^; / 소설을 읽을 때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문맥 속에 눈을 맡기고 따라간다. 시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시도해본다. 짧디짧은 '대학시절', '늙은 사람'이 쿵하고 다가온다.
[14.02.14 / p51~79]
기형도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순서대로 읽어가는 그의 시 한편한편에서... 그가 살았던 '시간'이 보인다. 그가 겪었던 '상황'이 보인다. 부끄러움에서 오는 '아픔'이 진한 느낌이라... 불편하다. 생소했던 시가... 가슴을 툭툭 건드린다. 지금의 나 또한 이 시집이 싫다.
[14.02.15 / p80~102]
-
[p88 중에서]
노인들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14.02.17 / p103~164]
-
[p134 중에서]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p164 중에서]
희망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무 때나 나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
[14.02.18 / p165~186]
시 분류 끝. 아무리 쉽게... 나만의 느낌으로 다가가 보려 해도...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드문드문 다가오는 작품들만... ^^;
[p174 중에서]
약속
아이는 살았을 때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아무도 그 꿈을 몰랐다.
죽을 때 그는 뜬 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별이 졌다고...
[14.02.19 / p187~249]
'영하의 바람'. 어릴적 일기장을 훔쳐본 듯한 기분. 이렇게 짧은 글이 이렇게 큰 여운을 줄 수 있다는 것. 글이 부리는 마술. / '겨울의 끝'. 흥. 그리고 허. 겨울의 끝은 봄이 아니라, 다음 겨울을 기다리는 시간일 뿐. 뭐 그런건가.;; / '환상일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걸까 하는 생각. 그리고... 마지막. 그제서야.. 앞선 장면들이 스르륵 흘러간다. / 작품해설. 그에 대한 나의 생각. '정답은 없다'가 아닐까 싶다. '말'과 '대화'가 어렵고, 중요한 이유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 따위는 중요치 않고, 듣는 이의 해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 작품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 그럼에도 기형도의 시 중 다수는 내게 '해석불가'였지만. 그렇기에 기형도의 소설 세편은 크게 다가왔다.
[p194 중에서]
비정상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슬픔은 교묘한 보호의 껍질을 체념으로 위장하고,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야무진 다짐으로 우리는 눈에 불을 켰다. 목사님이 아주 떠나셨을 때, 우리는 속세의 번뇌가 깡그리 청산되도록 피나는 수도를 연마해야 할 승려의 마음가짐이었다.
[p213 중에서]
윤국은 형이 이렇게 악을 쓸 때마다 인간의 외로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며, 그러한 주관은 상황의 종속물이라는 것, 또한 그러한 주관은 한 인간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집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무서움으로 몸을 떨었다.
[p214 중에서]
그렇구나. 정식으로 이름을 밝힌 상대는 이미 자신의 소개 속에서 벌써 단단한 밧줄로 나를 얽고 있다.
[14.02.20 / p250~281]
'미로'. 미로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작품. 병원에 대한 묘사와 환자 심리에 대한 묘사에 공감했다. / '그날의 물망초'. 와... 그날의 물망초 대박. 이리 짧은 에피소드 안에 모든게 다 들어있다. 마지막 반전을 예상 못한건 그만큼 내가 빠져들었다는 의미. / '어떤 신춘문예'. 헐... 그 마지막 눈물... 그 눈물이 무겁다.
[p255 중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병과 사내의 절망의 크기를 남몰래 각자의 저울에 달고 있는 듯한 눈치였고, 그 결과가 스스로에게 위안을 줄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의 주름살 사이나 입술, 눈꺼풀 사이로 살며시 웃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p259 중에서]
사람에게는 '기대 공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어쩌면 공포 한가운데서 느끼는 심리적 긴장과 불안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기대 공포는 그 공포라는 실체에다 사람의 상상력을 첨가시키기 때문이다.
[14.02.21 / p282~355(완)]
'노마네 마을의 개', 훔. 이건 좀.;; / '면허'. / 산문집. / 시대의 흐름 속... 등장한 인물들. 기형도 또한 그중 하나였다는. 그의 난해한 시 속에 들어있을 그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해. 혹은 아주 조금만 알게 되어... 아쉬움이 가득이다. 언제고 다시금 들쳐볼 작품.
3
책장을 덮고... '어렵다'는 이미지보다... 뒷편 소설과 산문집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내가 시를 모르는건지. 기형도의 진면목이
시가 아닌 소설과 수필에 있었던건지...^^;
입문도서로서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없는듯.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책.
그리고 찬사를 받은 작품들이기에... 나 또한 그 대열에 끼고
싶은 욕망.
이번 '기형도 전집'에는 별표를 표시하지 않았다.
아직 난 이 책을 평가할 입장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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