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2. 16:20ㆍBook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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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관심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혹은 위로부터 아래로 흐른다. 나의 경우에는 위로부터 아래로 흐른 경우. 조정래 선생님의 책들을 통해 현시점,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알아갈수록 조금씩조금씩 그 이전의 시간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그것이 조선에 닿아 있다. 조선에서 멈춘지 오래. 이유는 너무도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과... 알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나이 마흔은 넘겨야 그 이전 시대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이전의 시대로 넘어간 후에도 내내 봐야 할 시간. 조선.
이덕일 소장의 생각과 추론이 가슴에 와닿은지 오래. 최근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정도전'을 통해 조선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막연히 알고 있던 시간들에 대한 재 탐색. 그 시작이 고려말에서부터이다. 제목만 보고 고른 책. 사갖고 집에 와서야 표지에 씌인 대하드라마 '정도전'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한 강연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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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5 / p4~16]
이덕일 소장의 첫 번째 강연집. 대하드라마 '정도전'팀의 요청으로 인해 이뤄진 몇차례의 강연을 편집하여 출판한 책. 서문이 쿵하고 다가옴. 정도전의 이야기에 연달아 빠지니... 늪에 빠진듯한 기분. 그 기분이 나쁘진 않다. ^^;
[서문 중에서]
'역사 사史' 자가 들어가는 작품들은 그것이 사극이 됐든 소설이 됐든 어느 정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시대와 생존했던 인물을 그리기 때문에 후대인들이 마음대로 창작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개연성 있는 창작을 해야지, 이미 지나간 시대라고, 또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실제와는 정반대로 그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볼 때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어떤 시각으로, 즉 누구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사회는 관점의 견지에서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식민사관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일본 극우파, 즉 일제 침략자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것이 식민사관입니다. 그런데 이런 침략사관이 해방 이후에도 청산되기는커녕 지금까지도 살아남아서 주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역사는 전통적으로 지배층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가 아니라 지배층의 잘못을 비판하는 도구였습니다. 공자의 '춘추'가 그랬고, 사마천의 '사기'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배층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겠다는 역사서가 기본적인 통사였던 나라였으니 많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 '정도전과 그의 시대'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도전이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방원이 부친과 정도전에 맞서 쿠테타를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으로 명나라 중심의 국제 정세를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강연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쉽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깊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이 단점일 것입니다.
[14.02.26 / p17~66]
'1장 무너져가는 고려 왕실.' 시대를 반영한 성리학의 해석.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이 성리학을 내세웠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함.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중국역사로 이어진다. / '2장 절망 속에서 위민사상을 일구다.' 신돈에 대한 시선. 기록에 대한 물음. 신흥사대부, 온건개혁파 수장 이색과 정몽주. 역성혁명파 삼봉 정도전. 정도전의 유배생활에 대한 의미 재해석. 드라마에서 소재동 마을 이야기를 풀어낸 것.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책으로 습득한 지식에 사색과 경험이 더해져 산지식이 된다는 구절. 와닿음.
[p31 중에서]
우리가 철학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점 역시 관점입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가 만든 산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관점입니다. 철학이란 기본적으로 존재론이자 세상과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 즉 세계관을 뜻합니다.
[p42 중에서]
소수가 정치, 경제 권력을 독점하면 그 사회는 망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이치입니다.
[p49 중에서]
정치에서는 적의 적이 동지가 되기도 하지만, 나와 지지기반이 겹치는 아군도 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흥사대부는 권문세족의 적이라는 점에서 동지였지만, 근본 사상이 불교와 성리학으로 서로 달랐으며, 무엇보다도 지지기반이 겹치기 때문에 신돈과 신흥사대부는 같이 갈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 양자가 최대공약수를 찾아내서 연대를 할 수 있지만, 이는 상당한 정치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p62 중에서]
현실에서 절망한 한 지식인이 민중의 삶에 주목하게 되었고, 민중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14.02.27 / p67~158]
'3장 정도전, 이성계를 만나다.' 대동사회, 소강사회. 이상과 현실에 '차이'를 두는 것의 안타까움, 아쉬움. 참모사와 짱사의 차이. 짱사라는 표현 참신하고 씁쓸함. 조선개국의 첫 번째 이유는 역시 백성. 토지를 바라보는 온건개혁파와 역성혁명파의 시선의 차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그 해결방법에서 개국의 실마리가 나온다. / '4장 토지제도를 개혁하다.' 한두 사람이 아닌 다수의 집단을 이끌며,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바로 개인의 이기심이다. 고려말, 정도전은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토지문제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역사 속, 난 또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만난다. 그리고 현재를 바라본다.
[p87 중에서]
역사에서 '만남'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큰일을 이루려면 그 만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저는 한국사회와 중국사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참모사와 짱사의 차이라고 봅니다. 중국사가 중요한 고비마다 참모가 나타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참모사라면, 한국사는 짱, 즉 장이 혼자 다 하는 짱사입니다. 한국사는 예나 지금이나 짱이 혼자 사고하고,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가 급전직하 추락하는 인물이 많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만 살펴봐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면서 추락한 인물이 한 손가락으로 부족할 정도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남의 말을 안 듣는 것이지요.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압니다.
[p95 중에서]
모든 혁명은 이념에서 시작됩니다. 한 지식인의 머릿속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념이 자리 잡는 것이 혁명의 시작입니다. 그 지식인은 십중팔구 불우한 지식인입니다. 제가 경제, 경영사를 조금 공부해보니 혁신가는 대부분 비주류에서 나옵니다. 주류는 지키기 바쁩니다. 그래서 혁신가가 나올 수 없습니다. 한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려면 비주류에 주목해야 합니다. 불우한 혁신가의 머릿속 이념이 조직이나 무력과 결합되면 세상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p135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이 충돌할 때는 그 이면의 경제적 동기를 봐야 합니다. 겉으로는 모두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요.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아무도 위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을 위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고려 왕실에서 사전개혁이라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외면한 결과, 그 자신이 개혁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색이 보다 큰 정치가이자 학자였다면 역성혁명파와 대타협을 했어야 합니다. 철저한 사전개혁을 전제조건으로 고려 왕실을 존속시키고자 타협했어야 합니다. 사전개혁도 막고, 고려 왕조도 존속시킬 수 있는 묘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지 않고 서민들에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묘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p137 중에서]
문제는 경기도 내에 토지는 과전으로 줄 10만 결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경기도의 범위를 늘렸습니다. 양광도, 교주도, 서해도의 일부를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로 편재해 경기도의 덩치를 키웠습니다. 지금 경기도가 커진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와 상관없는 듯 살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과거와 연속선상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p143 중에서]
요즘도 경기에 따라 수조액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런데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도 국가에서 쓸 곳은 매년 늘어나니까 세금을 더 걷지 않습니까? 이런 관행은 일제 강점기 이래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선조들의 합리성을 배워야 합니다.
[14.02.28 / p159~223(완)]
'5장 조선의 개창이념, 성리학'. 유학에서 유교로. 학문과 종교의 변천사를 훑어보며, 정치와의 상관관계를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본다. 정치인들의 논리에는 반드시 역사적 반복이 포함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그 반복되는 역사는... 정치인들의 교묘한 포장과 사탕발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 / '6장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지다'. 노비 문제. 글쎄. 당시에는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요동 정벌론. 훔. 역사에서 '만약에'처럼 의미 없는게 없다지만. 자꾸만 생각하게 하는 우리 역사의 장면 중 하나이다. 여러 의견이 겹치는 이성계가 이방석을 태자로 삼은 부분. 이방원이 쿠테타에 성공한 이상, 그 진실을 알 수는 없다고 보여진다. 마지막 정도전의 죽음. 훔. 훔. 훔. 마지막 이덕일 소장의 말에서 이 책의 깊이를 되새겨 본다.
[p179 중에서]
학문과 정치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종교와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의 분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체제 기득권 유지주의자들입니다. 현 체제가 유지되어야 정치적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p210 중에서]
또 하나는 토지 문제만큼 노비 문제를 혁명적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노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 조선 개창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이는 정도전이 토지 문제는 일반 농민의 관점에서 바라봤지만, 노비 문제는 노비 소유자였던 신흥사대부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봅니다.
[p220 중에서]
정도전의 인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근본적인 메시지는 이런 것입니다. 한 사회가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많은 내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식자는 찾기 힘들 것입니다. 고려말과 유사한 것은 극심한 양극화 문제입니다.
소수의 권세가가 나라의 부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었던 고려 말의 상황과 소수의 갑과 다수의 을로 상징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은 얼마나 다를까요? 고려 말 왕족과 구가세족이 다수 백성의 토지를 빼앗은 결과 그들이 대대손손 더 잘살게 된 것이 아니라 나라가 망하고 왕족들이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과 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문제를 사회 내부에서 순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비등점을 향해 치닫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정도전의 인생은 그런 불행한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신에게 배우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3
참으로 재미난 접근법이었다. 몰랐던... 아니 알았었더라도 잊었던 사실들을 되새기고, 새로이 새겨준다. 이야기의 초점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이유에 있다. 그 중심에 서있는 정도전. 그에 대한 변명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조금은 '어렵다'는 인식을 받기도 했다. 이유인즉슨, 완전히 생소한 중국 역사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 또한 이유 하나하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 유학을 얘기함에 있어 중국이 등장함은 당연하지만... 생소함이 있다보니, 집중하기 조금은 어려웠다.
조선의 그림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반복됐던 사실, 또한 그 유래 등에 대해 비교하여 설명한다. 종종 현실에 대한 비유도 하니. 이해를 돋운다.
완전히 무지했던 시절에는 이성계에 대한 시선은 늘 곱지 않았다. 어찌 됐든 왕명을 거부한 반역자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 사실. 오히려 이방원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어떤 책을 통해서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지만... 이방원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읽게 된 책들과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정도전'. 그것들이 모두 내게 조금은 달리 생각해보라 말한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 이방원의 쿠테타가 가져온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조선왕조 500년을 얘기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 시작. 그 명분과 과정에 대한 물음을 깨끗이 해결해주는 책. 이덕일 소장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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