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20년 애연가의 금연 50일 성공기 (feat. 보건소 금연클리닉)

2018. 10. 19. 10:11Daily Life

그냥 다들 태우는 게 담배였습니다. 제가 담배를 처음 태울 때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죠. 금연인 곳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웬만한 곳은 전부 담배를 피울 수 있었어요. 담배를 피워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담배를 권하는 것은 예의였습니다. 

그렇게 20여 년간 애연가로 살아왔습니다만 세상은 변했습니다. 2018년 현재 흡연가는 죄인입니다. 금연구역이 아닌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어요. 여전히 뻔뻔하게 담배를 태우는 분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흡연가는 주위의 눈치를 봅니다. 저 또한 매너 있는 흡연가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치가 너무 보이더군요.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그 말이 가시가 돼서 절 찌릅니다. 제가 금연을 결심한 것은 건강 때문이 아니었어요. '더럽다! 더러워서 내가 담배 끊는다!' 네... 눈치 보다 더러워서 끊는다는 마음으로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확실한 금연동기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에 세갑 가까이 담배를 태우던 애연가이자 골초였습니다. 그런 저였기 때문에 처음 담배를 끊고 이틀간 극심한 금단현상을 겪습니다. 제가 겪은 금단현상 중 가장 큰 것은 집중력 저하였어요. 책을 좋아해서 독서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금연을 시작하자 글을 읽는 게 힘들어졌어요.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당황했습니다. 물론 감정 기복에 급격하게 올라오는 짜증,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강한 심리적 압박도 있었습니다. 금단현상이 심할수록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담배 금단현상이 이 정도면... 마약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싶어서 금연클리닉을 알아봤습니다. 병원을 가면 먹는 약을 준다고 들었어요. 근데 그 약의 부작용 중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심리적으로 좋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약물 도움은 받지 않기로 했어요. 결국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보건소 금연클리닉뿐이더군요. 바로 거주 지역의 보건소를 방문했습니다.




학생 시절에 교무실에 불려가는 기분. 딱 그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죠? 벌받을 학생처럼 주눅이 들어서... ㅎㅎ 그런데 응? 젊은 여성분이 앉아 있습니다. 왜? 전 당연히 나이가 조금 있거나, 남성분이 앉아 계실 거라 생각을 했는데요. 당황을 했어요. 

상담을 시작하는데... 솔직히 조금 많이 별로였습니다. 뭔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상담이 돼야 하는데요. 담배는 태워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여직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힘이 쭉 빠졌어요. 여하튼 멍하게 직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뻔한 내용들. 설명이 길어집니다. 그때도 속으로는 짜증이 자꾸 솟구쳐서 하마터면 "아 XX 됐으니까 당장 도움 되는 걸 줘!"라고 할 뻔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제 심리 상태가 안 좋았어요.





굳이 이런 걸 받으러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스러운 금연 도우미 책자와 내용물. 그냥 혼자 끊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는 생각으로 니코틴 패치를 부착하고, 책자를 어렵게 어렵게 정독했어요. 니코틴 패치는 솔직히 부착하면서 그다지 효과를 느끼지 못했어요. 초반에도 중반에도 지금도 깜빡하고 안 붙인 날들이 더 많았는데요. 차이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효과를 떠나 간지러움 때문에 안 붙인 날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가장 효과를 본 것 중 하나는 우습게도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행동요법'이었습니다. 지금도 사무실에 저 봉투를 세워놓고 종종 읽어요.



오늘까지 총 5회 방문을 했습니다. 방문하면 그동안 어땠는지 상담을 하고 탄소 수치라고 하나요? 음주운전 측정하는 것 같은 걸 합니다. 비흡연 시 0에서 5사이 수치가 나온다고 하는데요. 주변에 흡연자가 여전히 많다 보니 간접흡연 또한 수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네요. 

맨 처음 갔을 때 꽤 많은 실망을 했었습니다. 한 번, 두 번 가다 보니... 일종의 스스로 다잡는 계기 같은 게 되더군요. 뭐랄까요 금연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나 할까요. 점차 보건소에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약 50여 일 동안 금연에 성공하면서... (체감은 1년은 끊은 것 같아요ㅠㅠㅋ) 뭔가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취감이 아주 크네요. 50여 일 동안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보조 식품으로 선택한 쿨키스와 레모나에요.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씩 먹었습니다. 쿨키스의 화사함이 퍼지면 담배 생각이 많이 줄어듭니다. 레모나의 상큼함이 입안을 채우면 담배 생각이 줄어듭니다.

두 번째는 냄새입니다. 담배를 피울 때도 타인의 담배 냄새를 매우 싫어했는데요. 담배를 딱 끊고 나니까담배 냄새가 2배로 세게 느껴지더군요. (책자에 보면 원래 그렇다고 합니다. 죽어있는 세포가 살아나면서 후각, 미각이 발달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요)  그 역함이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한 명이 옆에 앉았는데... 담배 쩐내가 나는 거예요. 와 정말 그 자리에서 토할 뻔했습니다. 바로 내렸어요. 제가 담배를 피우며 보낸 그 긴 시간... 제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냄새를 풍겼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이 기억을 떠올립니다.

금연을 했을 때 오는 좋은 다른 점들은 솔직히 제겐 그다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람대접받으며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금연에 자신이 생기니! 이제 큰소리를 치고 있어요 ㅎㅎ 초반 며칠과 몇 주. 딱 그 고비만 넘기면 그 후부터는 상당히 수월해집니다. 금연을 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참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두서없이 작성해온 글 검토 없이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