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영영 이별 영이별 (14.03.10~11)

2014. 3. 11. 23:20Book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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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이 준 여파는 매우 컸다. 역사의 뒤안길. 그 구석을 후벼파고 들어가... 고름이 나는 아픈 상황을 예쁜 포장지로 감쌌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그 속을 흔들기도 한다. '불의 꽃'이 내가 읽은 첫 김별아 작가의 작품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일전에 전자책으로 '채홍'을 읽었었다. '채홍' 또한... 신선한 충격을 줬던 작품. 그래서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이 궁금해졌다. 우선은 '불의 꽃' 맨 뒷면에 나와있는... 해냄 출판사 작품들만 주문을 했다. 그중 처음 읽기 시작하는 '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작가의 작품들]


2014/02/15 - [Book Story] - [Book] 채홍 (12.02)


2014/02/18 - [Book Story] - [Book] 불의 꽃 (14.0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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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10 / p5~60]

처음 알게 된 존재. '정업원'. 조선 제6대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이야기. 소설에 등장하는 조선 왕실 가계도. 그 속에 내가 읽은 김별아의 다른 두 작품. '채홍'과 '불의 꽃'의 시대가 들어 있다. 신작이라 하여 그런줄 알았는데, 2005년 원작을 편집하여 내놓은 개정판. 화자인 정순왕후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p44 중에서]

행운보다 불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좋은 것도 마냥 좋을 수 없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언제 어떻게 빼앗겨버릴 행복일지 몰라 그마저도 흠뻑 즐기지 못하고 조바심치기 마련입니다. 


[14.03.11 / p61~270(완)]

임종을 맞은 송씨가 원혼이 되어 단종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오랜 시간 두고 보고 들었던 왕실의 여인들, 단종 죽음 이후 자기 자신의 이야기들. 그리고 단종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 내가 읽는 김별아 작가의 세 번째 작품. 나 또한 늘 궁금하고 때론 상상하는 굵은 역사에 가려진 뒷이야기들. 드러나지 않은 과정의 이야기들. 하지만 이번 '영영이별 영이별'은 그 뒷면보다는 같은 면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에 초점을 맞춘 듯. / 지난 뜨거웠던 여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청령포, 관음송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p71 중에서]

세상에 스스로 빛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그를 흐리는 것은 권위와 영광을 훔쳐 제 것으로 취하려는 모리배들일뿐, 어찌 홀로 휘황찬란한 빛에게 죄를 묻고 벌을 가하리까?


[p91 중에서]

난세는 사람들에게 고통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리를 벌려 제 꼬리를 물고 도는 뱀처럼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심성을 일그러뜨립니다. 정치를 모르는 백성들조차 어지러운 세상의 파고에 실려 들썩들썩 오르내리는 동안 저절로 음험해져 갔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속이고 배반하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쁜 사람이 나쁜 세상을 만듭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서야 나쁜 세상을 견딜 방도가 없습니다. 


[p108 중에서]

하지만 하늘이시여, 당신이 옳습니다. 사람의 판결이야말로 아무리 법과 정의를 내세운대도 궁극에 이르기까지 공정하기는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판결이야말로 세월이 흐른다 해서 없어지거나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법이니, 사람으로 태어나 오직 두려워할 것은 하늘뿐인가 하옵니다. 


[p140 중에서]

당신, 나를 다시 만나면 칭찬해 주셔요. 왜 이제야 왔나 탓하지 마시고 그동안 수고했다 애썼다 다독다독 어깨를 두들겨주셔요.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수는 없을지언정 질기고 모진 목숨을 이어 이만큼이나 오래 살아내고야 만 것이, 결국 내게 허락된 유일한 복수였으니까요.


[p148 중에서]

소문은 끈질겼습니다. 소문은 재빨랐습니다. 소문은 포악한 육식수처럼 공포를 흡혈하고 몸피를 불렸습니다. 아무리 높은 담이라도 단번에 뛰어넘는 날랜 소문은, 겹겹이 문이 달린 구중심처 궁궐을 빠져나와 민간에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p238 중에서]

예감이란 지옥에서 보내온 서신 같은 것인가 보죠. 나쁜 쪽으로 훨씬 잘 들어맞으니 말입니다. / 영이별다리 영도교. 그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됐다. 현재 청계천에 다시금 세워진 영도교. 언제고 들를 일이 있으면 한번 거닐어야 겠다는 생각^^;


[p244 중에서]

칼 끝에 몰려 벼랑에 서기까지 나와 당신에게 일말의 잘못이 있다면, 끝까지 사람을 믿었던 것뿐입니다. 우리가 까마득히 몰랐던 것은 권력도 정세도 아닌, 다만 사람이었습니다. 


[p254 중에서]

사람에게서 배우고 자연으로부터 깨닫습니다.

사람에게 그토록 가혹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지만, 온기를 나누어 괴로움을 어루만지고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사람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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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이별 영이별

저자
김별아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14-0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로 쫓겨 간 단종과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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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혼이... 이미 죽은 이에게 말하는 독백. 그 속에 그 시대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처음 등장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조선왕실 가계도를 보고. 난 당시 왕실의 여인들에 대해 얘기하려나 했다. 이유인즉슨, '불의 꽃'과 '채홍' 모두... 조선의 여인들에 관한 얘기였기에. 하지만 점차 예상을 빗나갔다. 이것은 비단 여인들 뿐 아니라... 사내. 그리고 사람들에 관한 얘기였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바꼈다. 당시와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바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은... 바로 '사람'. 그렇기에 머나 먼 조선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지난 여름. 가족여행으로 단양을 다녀왔다. 그 중 코스로... '청령포'를 갔는데. 그곳에서 난... 뭐랄까.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단종을 만나기도 했다. 그 아픈 나의 기억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 다녔다. 아무런 명분이 없었던 세조. 그 또한... 마지막에는 그 권력의 부질없음을 느꼈을까? 무엇을 위해 그리 많은 피를 흘렸을까. 세조를 떠올리며, 최근 자주 만난 태종 이방원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 현실에서 또한 자주 하게 되는 질문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까?' .... 소설은 내내 아프다. 가슴을 콕콕 찌른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노파라고 하기엔... 그 음성에서 소녀가 느껴진다. 소녀는 소년을 떠나보냈고... 평생을 그리워하다. 마지막 떠나기 전. 소년에게 말한다. '전하. 거기 계시옵니까?'


김별아 작가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말 밖에는... 특유의 화법과 묘사가 날 아주 그냥 잡아 끈다. 끌어^^. 당분간은 김별아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