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7. 06:08ㆍBook Story
1
김별아의 산행 에세이.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산행 에세이가 가질 수 있는 매력에 대해 알고 나고. 접하게 된 정유정 작가의 산행 에세이 소식. ‘28’ 이후 새로운 작품은 내년 이후에나 나온다는 소식에... 아쉬웠는데. 산행 에세이이면서 정유정 작가의 글이라는 생각에 기대를 하고 기다리고, 구입했던 작품.
2
[14.05.02 / p3~54]
아. 승민. ‘내 심장을 쏴라’의 깊은 우울함이 다시금 밀려온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재능이다. 내겐 재능이 없기 때문^^; 두 번째는 그것이 다른 어떤 노동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유정 작가의 그 고통 토로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한다. 그 치유로 여행을 선택한 정유정. 막연히 떠오른 그 장소가 승민에게 특별했던 바로 거기. ‘안나푸르나’. 근데 난 드라마 ‘나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건 왜일까. /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남편의 걱정을 이렇게 맛깔나게 써내려 가다니. 감탄스럽다. 지난 세 작품의 깊은 어둠은 온데간데 없고, 밝디밝은... 또 엉성한 정유정을 만난다. / ‘1 Day : 9월 5일’ 정유정이 볶음밥을 먹는데... 내가 다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이 책을 선택한게 후회된다. 작가 개인을 안다는 것은... 내겐 종종 불행한 일이기에.
[p15 중에서]
넉넉잡아 이틀이면 끝낼 일이건만, 첫 문장조차 잡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텅 빈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다 맥없이 드러누워 버리기 일쑤였다. 마감을 하루 앞둔 날까지도 그랬다. 발을 구를 일이었다.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달 가까이 끙끙대고도 원고지 30매를 못 채우다니.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소설 초고 250매를 써대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이건 단순히 청탁원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슬럼프와는 증세 자체가 달랐다. 암반에 갇힌 불길이 아니라 불씨까지 타버린 잿더미였다. 욕망이라는 엔진이 꺼져버린 것이었다. 이야기 속 세계, 나의 세상, 생의 목적지로 돌진하던 싸움꾼이 사라진 것이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에 대한 대비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저 혼란스러웠다. 책상 위에 쌓아둔 다음 소설 자료와 책, 새 노트가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덮쳐오는 허망함에 당혹을 넘어 공포를 느꼈다. 누군가 내 상태를 알아차릴까 봐.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 봐. 고작 소설 몇 편 쓰고 무너지는구나, 싶어서. 나는 강아지처럼 낑낑대다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p18 중에서]
세상에, 목소리마저 멋있었다. 나는 멋있는 남자라면 무턱대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지금부터 듣게 될 사부님의 말씀을 성경으로 받아들이리라 마음먹었다.
[p21 중에서]
이튿날, 남편은 무려 100여 쪽에 이르는 고산병 자료를 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14.05.03 / p55~97]
‘2 Day : 9월 6일’. 귀여운 “까자”. 정유정의 콜라의 추억... 흐흐 거리며 웃었다. / ‘3 Day : 9월 7일’. 정말이지 쾌변은 어려운 미션이다. / ‘4 Day : 9월 8일’. 검부표 볶음밥 먹고 싶다. / 중간중간 나오는 풍경들 사진에 그저 부러움. 침만 질질. 전반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다. 이게 산행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맛깔나는 표현들이 가득이다. 다만, 김별아의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에서 상황별로 작가의 생각과 비유들이 깊었는데... 이 책은 포커스가 오롯이 산행에 잡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나프루나에 별 관심 없는 나로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p73 중에서]
엉덩이에 힘을 주고 걸었다. 이틀 전과는 정반대 이유로 진땀이 났다. 똥을 뿌리며 앞서가는 나귀들이 부러웠다. 너넨 좋겠다. 누고 싶을 때 눌 수 있어서.
[p86 중에서]
내려갈 걸 왜 올라가는 걸까. 올라 갈 걸 왜 내려가는 걸까. 평평하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면 좀 좋겠는가. 지치지도 않고, 기껏 벌어둔 판돈을 한 판에 까먹은 도박꾼처럼 억울한 심사가 들지도 않을 테고.
[14.05.04 / p98~127]
‘5 Day : 9월 9일’.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 편에서 배우 정준이 고생하던 고산병. 화면 상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는데... 정유정의 표현 속에서 절절히 느껴진다. / ‘6 Day : 9월 10일’.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정유정의 유쾌함이 되려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 정말이지 무작정 길을 떠난 정유정. 여행을 다녀본 적 없는 그녀이기에 바라보는 장면 하나 생각 하나를 참 꼼꼼이도 기록했다는 생각이 든다.
[p118 중에서]
어머니는 회초리를 꺼냈다. 내 거짓말이 마음에 안 드셨던 거다. 반면 하느님은 마음에 드셨던 게 분명하다. 나를 소설가라는 직업거짓말쟁이로 만든 걸 보면. 안 그런가?
[14.05.05 / p128~192]
‘7 Day : 9월 11일’. 스티븐 킹의 작품에는 재미가 있다. 의미를 생각지 않고도, 그냥 스토리만 따라가도 흥미를 돋운다. 그리고. 그것을 곱씹을수록 그 속의 내가 보이고... 다른 이가 보인다. 대작가는 대개 비슷한 듯 하다. 조정래 선생님 작품들 또한 그러하니. 스티븐 킹의 작품을 빗대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보며. 히말라야 속의 정유정 자신에게 대화를 걸어본다.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얘기다. / ‘8 Day : 9월 12일’. 아프디 아픔을 얘기하고 난 뒤라 그런지 더욱 귀염 터지는 정유정. / ‘9 Day : 9월 13일’. 코리안보이와의 재후. 그리고 사인과 인증샷. 허세 작렬. / ‘10 Day : 9월 14일’. 계기가 계기인지라 자주 등장하는 승민. 무언가를 묘사한다는건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니. 경험이 보태져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겠구나를 느낌. 화장실을 향한 쾌속 질주 때문에 하늘에 오른 것을 잊는다^^;
[p133 중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가 있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삶이 단단해지지 않았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어둠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생과 싸우는 법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링이 아닌 놀이터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전의를 불태울 대상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테다. 나는 노는 일마저 훈련해서 노는 인간이 되었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정전 상태에 빠뜨린 원인이었다. 내 판단에는 그랬다.
[p141 중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엎어지면 다시 못 일어 날 것 같았다. 울면 폭발할 것처럼 팽창하는 가슴 속 불덩어리가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그걸 온전히 간직해야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p169 중에서]
나를 이렇게 낳았을 “엄마”를 부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만지며 마음으로 약속했다. 너는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그럴 수 있도록, 너를 지킬 것이라고.
[14.05.06 / p193~249]
‘11 Day : 9월 15일’.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비단 정유정 뿐 아니라... 의외로 많은 이들이 겪고 있을 두려움이 아닐까. / ‘12 Day : 9월 16일’. 검부가 갈수록 귀여워짐. / ‘13 Day : 9월 17일’. 여행이 즐겁고, 또 의미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것. 정유정이 이 여행에서 치유가 된 것의 가장 큰 비중은 아마 검부가 아닐까. 한국식으로 원샷을 배운 그의 이야기가 사실 별게 아닌데도 뭉클해진다. / ‘14 Day : 9월 18일’. 어... 개를 무서워하는 나. 정유정이 처음 느낀 그 공포를... 완전 공감. 짧았지만 공포물을 읽는 기분이었음. ㄷㄷ.
[14.05.07 / p250~307(완)]
‘15 Day : 9월 19일’. 일반인들의 등반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시점은 하산할 때다. 오를 때 품었던 긴장이 풀리고... 체력 분배를 못한 경우가 많아 힘이 없기 때문이다. 왠지 그런 걱정이 든다. / ‘16 Day : 9월 20일’. 숲은 참 좋지만... 벌레는 너~~무 싫다ㅠㅠ / ‘17 Day : 9월 21일’. 중국인 소식. 섬뜻. 아쉬움과 동시에 밀려오는 뿌듯함. 정유정의 그 기분에 동화된다. / ‘에필로그 / 작가의 말’. 이 산행기가 쓰여진 계기에 또 빵 터지고... 네팔병에 대해 말하는 정유정에 또 깊이 공감했다. / 와... 산행기가 내게 이렇게 의미와 재미를 줄지 미처 몰랐다. 겨우 두 번째 접한 산행기. 좋아하는 작가의 산행기가 있다면 또 눈을 씻고 찾아봐야겠다^^; 삶과 여행. 그리고 삶과 산이 닮은 꼴이여서인지... 내딛는 걸음걸음, 생각이 많아지고. 내딛는 걸음걸음, 또 생각을 버릴 수 있다. 정유정 작가 본인의 삶과 생각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된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지만... 또 그렇기에 그녀의 작품들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p280 중에서]
우리는 안나푸르나의 출구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혹은 떠밀려가는 사람처럼,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p285 중에서]
사람의 성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밝히자면, 어렵게도 변하지 않는다. 타고난 성질은 완강한 항상성을 유지한다. 변하는 쪽은 성질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획득한 사회적 자아일 것이다. /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7년의 밤’. 마지막... “그래서.... 넌 아니기를 바란거야”
[p288 중에서]
어떤 이는 여행에서 평화를 얻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삶의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사랑을 깨닫고, 어떤 이는 자신과 화해하기도 한다. 드물게 피안에 이르는 이도 있다. 나로 말하면 확신 하나를 얻었다. 나를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닭이요, 시끄러운 뻐꾸기였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결론적으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는 다르지 않았다. 달갑잖은 확신을 얻었고, 힘이 남아돌아 미칠 지경이라는 게 그때와 다를 뿐. 몇 년 후, 어쩌면 몇 달 후, 가까스로 얻은 힘을 전력질주로 써버리고 다시 히말라야를 찾아 올테지.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3
정유정이 쓴 작품들. 그 중 내가 읽은 ‘7년의 밤’, ‘내 심장을 쏴라’, ‘28’. 모두 깊은 바닥을 경험하게 해줬다. 우울함을 듬뿍 안겨줬던 작품들. 당연히 그 작가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린 산행에세이. 엉뚱하고... 털털하며... 유쾌하고... 밝았다.
책을 읽어가며...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 이유인즉슨 정유정 개인에 대해. 그녀의 지난 과거와... 현재의 생각에 대해 너무 많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정유정 작가의 작품들이지... 한번 만나본 적 없는 작가 본인이 아니다. 작가 본인에 대해 안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작가의 작품이 신선하지 않고... 선입견에 가득찬 채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포기 하지 않은 이유는 한때 작가를 꿈꿨고... 평생 나 또한 글을 쓰고자 했던 사람으로서. 프롤로그 속 그녀의 아픔. 그리고 외침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금 힘을 내서, 또 내게 새로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와... 산행기가 내게 이렇게 의미와 재미를 줄지 미처 몰랐다. 겨우 두 번째 접한 산행기. 좋아하는 작가의 산행기가 있다면 또 눈을 씻고 찾아봐야겠다^^; 삶과 여행. 그리고 삶과 산이 닮은 꼴이여서인지... 내딛는 걸음걸음, 생각이 많아지고. 내딛는 걸음걸음, 또 생각을 버릴 수 있다. 정유정 작가 본인의 삶과 생각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된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지만... 또 그렇기에 그녀의 작품들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며... 또 산이라는 것이 내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타인의 힐링에... 나까지 힐링이 됨을 느끼며. 올해가 가기 전에 또 한번 훌쩍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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